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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것을 멍하게 보는듯한 이야기 전개와 결말이란 완성품이 눈에 보이는 이야기들을 보고 있자면 내가 독자인지, 공장감시인인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음은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까? 이 사건을 이렇게도 바라볼 수 있구나 ! 라는 생각을 들게 해주는 멋진 책이 나왔다. 단편집중에 실린 기사도와 다른 늑대도 있다를 읽으면서 선술집 같은 곳에서 주워들을 수 있는 섣불리 말하는 세상의 진실이 아닌, 면면히 흐르는 이야기의 힘을 포착해낸 작가들의 예리한 눈에 감탄을 하게된다. 사실 어쩌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같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말해야 하는 것이 문제일 수도 있다. 몸과 달리 경계도시를 사는 뇌의 전두엽에게 말하는 신선하고, 위트넘치는 이야기 방식과 놀라운 이야기들이 정소연씨의 매끄러운 번역과 창비를 통해 한국어로 다시 태어났다. 마치 동방박사가 된 심정으로 책앞에 귤과 꿀차를 드리고 정성스레 손에 안아들고 읽어나갔다. 물로 귤과 꿀차를 종이에 먹여서는 안된다. 그것은 제사상처럼 읽는 사람의 몫이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마치 뻣뻣해진뇌를 세탁기에 넣고 섬유유연제를 넣어 돌리는 듯한 유연함이 느껴졌다.
다른 늑대도 있다 는 장르문학의 전통이 깊은 영미권 판타지문학계에서 지난 30여 년간 발표된 작품들 중 정수를 가려 뽑아 모았다. 작품이 실린 작가들을 살펴보면 가히 그 수준이 짐작된다. ‘어스시’ 시리즈로 세계 장르문학 애호가뿐만 아니라 수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어슐러 K. 르 귄을 비롯해, 그래픽 노블 사상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샌드맨’ 시리즈의 닐 게이먼도 이름을 올렸다. 엔더의 게임 으로 어린이가 등장하는 SF의 새로운 장을 연 올슨 스콧 카드는 국내에 미발표된 ‘앨빈 메이커’ 시리즈의 출발점이 되는 무게감 있는 단편을 실어 S.F독자들을 설레게 한다.

청소년기는 상상력의 시절이다. 이 시기에 자연스럽게 꿈틀거리는 생기발랄한 상상력을 효과적으로 북돋는 일은 개인의 사고력과 감수성이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책 다른 늑대도 있다 는 중세 유럽풍의 고풍스러운 무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장구한 대서사시가 아닌, 지극히 일상과 맞닿아 있는 ‘새로운’ 판타지 단편들을 통해 독자들이 품고 있는 상상력의 한계에 도전한다. 10대를 위한 SF 걸작선 저 반짝이는 별들로부터 와 동시 출간되어 더욱 기대를 모으는데, 두 권을 나란히 놓으면 한 장면으로 이어지는 표지 콘셉트로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머리말

기사도·닐 게이먼
캐리스·엘런 쿠시너
조의 머리카락· 수전펄윅
다른 늑대도 있다·해리 터틀도브
신을 훔치다·데브라 도일·제임스D.맥도널드
엄마 갔어·제인 욜런
뼈 여인·찰스 드 린트
리자와 크레이지 워터 맨·앤디 던컨
집 앞에서 기다리는 엄마 아빠·셔우드 스미스
휘파람 부는 새·에마 불
땅의 뼈·어슐러K.르귄
해트랙 강·올슨 스콧 카드

옮긴이의 말